30년 전, 건축사의 꿈을 꾸며 건축공학과에 입학했지만 상황에 따라 여러 대안을 고려해야하는 설계는 정작 제 적성과는 잘 맞지 않았고 대신 건축구조를 전공하면서 건축사의 꿈은 서서히 잊혀졌습니다. 결혼 후, 일과 휴직을 반복하다가 어느새 40대 중반의 전업주부가 되었고, 어느 날 건설회사에 다니는 남편이 현장에 건축사시험을 준비하는 직원이 있다며 느닷없이 툭 던진 말에 정신이 번쩍 들었습니다. 설계사무소의 실무 경력이 없이도 건축사예비시험을 합격하면 건축사가 될 수 있다는 사실, 그 예비시험이 2019년 올 해가 마지막이라는 사실에.

 그동안 왜 몰랐을까. 건축사시험에 관심이 전혀 없었기 때문에 한 번도 자격요건을 살펴볼 생각조차 하지 못했습니다. 자격요건을 알았더라면 좀더 일찍 준비했었을 텐데... 늦었지만 이제라도 그 막차에 올라타고 싶었습니다. 스무 살의 빛나던 꿈, 건축사, 그동안 잠들어있던 그 꿈이 운명적으로 다시 깨어났고, 그렇게 허둥지둥 준비를 시작했습니다. 다행히 2019년 5월 건축사예비시험은 한 번에 합격했지만, 한솔아카데미의 기본개념 온라인강의만 듣고 무모하게 도전했던 9월의 건축사자격시험은 전 교시 미완성 도면으로 말도 안 되는 점수를 받았습니다. 제도판 앞에 앉아서 겨우 3개월 남짓 준비했으니 그건 당연한 결과였습니다.

 이듬해 2020년 1회 시험은 코로나 때문에 6월로 연기되어, 9개월 정도의 시간적 여유가 있었으나 설계 실무경험이 전무했던 저에게는 그 시간도 터무니없이 부족했습니다. 그동안 장점이라 여겼던 꼼꼼한 성향 때문에 시간 내에 완도 하는 것 자체가 너무 힘들었습니다. 무조건 완도를 목표로 준비했고, 다행히 2교시는 합격했지만 3개월 후의 2회 시험, 1, 3교시 모두 미완성으로 불합격했습니다. 그때 깨달았습니다. 1회 차에 한 과목씩 집중해서 준비해야 합격이 가능한 제 역량을. 그래서 제일 실력이 부족했던 3교시를 마지막 과목으로 결정하고, 다음시험까지 남은 6개월을 1교시에만 집중했습니다.

 배치계획 점수가 늘 들쑥날쑥하였기 때문에 1교시의 작도법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했고, 김수원 강사님의 유튜봐 강좌를 들으며 다시 처음부터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글씨까지 뜯어고치며 이듬해 2021년 1회 시험, 1교시를 합격하고, 2회 시험까지 남은 5개월 동안 3교시 준비에 전념을 다했습니다. 그러나 단면설계 과목은 또 여전히 미완성. 당시 3교시 합격률이 4%라는 사실에 그나마 위안했지만, 갈수록 난이도가 높아지는 이 시험을 계속 준비하는 것이 옳은가 고민하기 시작했습니다. 체력도 점점 고갈되어 지쳐갔고, 남아있는 자신감마저도 바닥을 드러내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결국 해냈습니다. 2022년 1회, 3교시 최종합격으로 저의 무모했던 도전이 드디어 결실을 이루었습니다. 목표를 정하고 공부하는 것을 좋아하기에 시작했지만, 머리와 손이 함께 움직이기까지 상당히 오랜 시간이 걸렸습니다. 시간 내에 완도도 못하는 실력으로 돋보기까지 쓰고, 만성적인 허리 통증에 시달리면서 얼마나 후회와 다짐을 반복했던지... 포기만 하지 않으면 결국 합격한다는 50대 분들의 합격수기를 읽고 또 읽으며 버텼습니다. 그렇게 1년에 한 과목씩 3년의 수험생활을 끝으로 48세에 드디어 꿈을 이루었습니다. 만약 한솔아카데미의 온라인 강의가 없었다면, 가족들의 무한 배려와 응원이 없었다면, 저의 꿈은 불가능했을 것입니다. 모두에게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건축사, 늦은 나이라 도전에 용기가 필요했던 꿈, 누군가에게는 더 간절했을 꿈, 한없이 기쁘기만 할 줄 알았던 건축사 합격, 이젠 그 꿈이 저를 새로운 도전과 책임감으로 나아가게 합니다. 늘 그렇듯 배움에는 늦음이 없기에 앞으로의 새로운 도전도 저는 두렵지 않습니다. 100세 시대에 겨우 절반 산 인생인데, 인생의 서막을 다시 열수 있다는 기회를 얻은 것만도 가슴 벅찬 일이니까요. 수험생 여러분, 포기하지 마시고 끝까지 도전하십시오. 작도의 절대시간이 쌓일수록 손가락의 굳은살이 두꺼워질수록 합격은 점점 더 가까이 다가옵니다. 간절하게 꿈꾸며 노력하다보면 결국엔 그 꿈이 이루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