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대학에서 건축을 전공하고 졸업 후 공병장교로 복무했고 건축설계 전공으로 대학원을 졸업후에 건설회사에 취직하여 총 20년 넘게 건축분야에 종사하였지만 특별히 자격증을 취득하고자 하는 의지는 크지 않았습니다.
특히, 건설회사에 취직했기 때문에 건축사 자격 취득은 나와는 상관없는 일 처럼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직장에서 어느정도 직급이 되고 경력은 쌓였지만 점점 매너리즘에 빠져드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고, 그래서 무엇인가 새로운 도전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하던차, 자격 취득에 대한 생각에 불을 붙인 것은 속속 들려오는 후배들의 건축사 자격 취득 소식이었습니다. 합격하기 매우 어려운 시험이라는 점 그리고 공부를 시작하게되면 발생할 개인적인 시간에 대한 희생, 한참 시간을 같이 보내야 할 것 같은 어린 아이들에 대한 걱정 등등 최종적으로 시험에 도전하기 까지 어마어마한 마음의 부담이 생겼지만 지금까지 앞만 보고 달려온(?) "건축인생"에 대해 무엇인가 큰 쉼표를 찍어보자는 결심으로 시험에 도전하게 되었습니다.
우선 도전 첫해(2014년)에는 건축사 예비시험과 자격시험을 동시에 준비해야 했습니다. 앞서 언급했던 도전에 대한 부담감에 선뜻 빠른 결정을 못했기 때문에 먼저 준비를 시작한 직장동료의 추천으로 3월에 시작하는 한솔학원 정규과정을 부랴부랴 수강신청 하였습니다.
첫 준비하시는 분들이 다 비슷하겠지만 무엇(도구)을 준비해야 하는지도 모르고 강의를 들어가며 하나씩 준비했고 수업시간에 작도하라고는 하는데 도대체 무슨 말인지 이해가 안되서 곁눈질 하며 수업을 따라갔던 것 같습니다.
한편, 예비시험은 과거에 치뤘던 기사시험과 크게 다른 느낌은 안들었지만 통과하지 못하면 자격시험에 도전할 수 없다는 부담이 있는 시험이기에 퇴근 후 매일 두세시간을 도서관에서 한솔 교재로 공부하였는데 두가지를 동시에 준비한다고는 했지만 5월까지는 대부분의 시간을 예비시험에 투자하여 자격시험 준비는 학원 출석과 주말 몇시간 정도밖에 못했습니다.
나름 많은 시간을 투자해서 열심히 공부한 보람(?)인지 예비시험은 상당히 높은 점수로 합격하였는데, 여기서 약간 자만심 같은 것이 생겨났습니다.
'예비시험과 자격시험이 뭐 큰 차이있겠어? 자격시험도 열심히 하면 붙겠지'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런 자만심과는 별개로 예비시험 합격 후 자격시험 준비를 정말 열심히 했습니다. 직장을 다니면서 매일 서너시간을 꾸준히 공부하고 주말에도 자리에 앉아서 도면과 씨름하는 것이 쉬운일이 아니지만, 첫해에 끝내고 싶은 욕심도 있었고 예비시험의 고득점으로 인해 "하면된다"라는 자신감으로 열심히 시험을 준비했습니다.
하지만 글로 보는 예비시험과 도면 작성으로 보는 시험은 달랐습니다.
1교시 분석조닝은 내용을 모르고 놓치는 부분이 너무 많았고 배치는 엉뚱한 방향으로 잡는 경우가 부지기수였습니다.
2교시 건축설계는 그래도 나름 대학원에서 건축설계를 전공했다고 자부(?)하는 마음이 있었지만 주어진 시간내에 수수께끼같은 조건에 맞춰 최적의 안을 찾는 "시험"으로는 도저히 답이 안나오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3교시는 설비와 구조의 경우, 내용을 이해하면 풀 수 있겠다는 생각은 들었지만 단면은 도저히 시간내에 작도가 안되었습니다. 7월까지는 정말 엉덩이 붙이고 앉아있는 시간은 많았지만 한 과목 푸는데 5시간, 6시간도 걸리고 또 어떤 때는 하루종일 풀어도 못 풀겠어서 다음날 다시 해도 풀리지 않았던 끔찍한(?) 시기였습니다.
하지만 8월이 되니 나름 많은 문제들을 풀어서 그런지 작도 시간도 단축되고 어떤 문제가 나와도 "어느 정도" 풀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조금씩 들었습니다.
비록 전국모의고사에서 형편없는 점수들을 받긴 했지만 그래도 그 시기에는 약간의 자신감(?)이 생겼고 '한번 해볼만 하다'라는 생각을 하게되었습니다.
드디어 대망의 9월 자격시험.
예상과는 달리 추석을 지내고 보는 시험이라 추석기간도 열심히 공부를 하게되어 다행이라는 생각을 했고 조금 부족하다고 생각되는 부분들을 그 시간에 정리하고 연습할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시험을 보는 당일도 많은 준비를 했다는 만족감과 드디어 나의 실력(?)을 발휘할 때가 되었다는 설레임을 가지고 시험장에 들어갔습니다.
그러나, 1교시, 어딘가 이상했습니다.
시험지에 이상한(?) 격자무늬가 있었습니다.
순간 당황했지만 모든 이들이 알고 있는 만고의 진리. '내가 어려우면 남도 어렵다.'를 되뇌이며 꾸역꾸역 문제를 풀었습니다.
2교시, 무엇인가 잘 맞아떨어지진 않았지만 그래도 꾸역꾸역 풀었습니다.
3교시, 철골구조입면과 지붕, 주각부 상세를 그리랍니다. 좀 난감합니다.
단면은 그리 어려운 난이도는 아닌 것 같았습니다.
아무튼 정신없는 10시간에 걸친 시험이 끝나고 기진맥진 하였지만 그래도 "어느 정도" 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시험이 끝나서 이제는 그동안 못했던 것들 할 수 있겠다는 행복감도 들었습니다.
가족들이나 주변에서 시험에 대해 물어봤을때도 '결과는 나와봐야 알겠지요.'라고 했지만 내심 두과목 정도는 Pass 가능하지 않을까 생각도 했습니다.
드디어 시간은 흘러흘러 11월, 발표의 시간이 되었습니다.
12시가 다가올 수록 두근두근 거리는 심장소리가 귀에 들릴 것만 같았습니다.
합격자 명단이 보이자 심장이 터질듯 뛰며 내이름이 어디있을까 살펴보았습니다.
없었습니다. 그렇게 고대하고 기대하던 제 이름은 아무데도 없었습니다.
결과는 세과목 불합격. 점수도 3교시를 제외하면 합격은 꿈도 못꿀 수준이었습니다. 허탈하였고 머리와 가슴이 텅 비어버린 것 같았고 한편으로는 이렇게 노력했는데 한과목도 못붙는 이런 시험을 내가 계속해야되나? 집안일은 하나도 신경 못썼고.. 퇴근 후에 공부하러 가는 아빠를 당연하게 생각하는 아이들, 아내에게 미안했습니다.
괜히 시험보겠다고 해서 가족들에게도 이런 고생을 시키는지..몇개월 간은 그야말로 "멘붕"이 와서 시험에 대한 생각은 하지 못하고 지냈습니다.
시간은 다시 흘러 2015년 3월,
저는 다시한번 도전하자는 결심을 하고 정규반부터 시작하였습니다. 학원을 옮길까? 통신강의로 들을까? 등등 고민을 하기도 했지만 다시 처음부터 시작한다는 생각으로 한솔 정규반으로 다시 시작했습니다.
결론부터 이야기 하자면 올해 세과목을 동시에 합격하였고 오매불망 고대하던 "건축사" 자격을 취득하게 되었습니다.
2년차 수험생활을 돌이켜보면 솔직히 1년차때만큼 열심히 하지는 못했습니다.
1년차때와 똑같은 과정을 보내면서 매너리즘에도 빠지고 슬럼프에도 빠지고 며칠씩 공부와 담쌓고 지내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지나고 나서 생각해 보니 1년차때 열심히 했던 것이 정말 큰 자산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아는 것만큼 보인다고, 2년차에 1년차때 작도했던 것들을 보며 '내가 이러고도 합격을 꿈꿨구나!' 하는 부끄러움이 생겼던 것을 보면, 2년차에는 1년차에 좌충우돌하며 습득했던 것들이 나름 체계화되며 "거친돌이 연마"된 것이라 생각됩니다.
두서없이 써내렸지만 글을 마무리하며 몇가지 당부드리고 싶은 바를 적고자 합니다.
1. 고민할 시간에 시작하자. - 과연 할 수 있을까? 힘들텐데? 자격 취득해도 크게 달라지는 건 없을 것 같은데...그런 고민을 할 시간에 도전하기로 결정했다면 바로 시작하십시오.
시작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달라지는 것은 없습니다.
2. 처음 할때 독하게 하자. - 앞서 이야기 한 것 같이 첫해에 열심히 했던 것이 결과가 안좋아서 실망도 크게 했지만 결국 그것이 큰 자양분이 되어 비교적 단기에 합격가능했다고 생각됩니다.
첫 해에는 독하게 욕먹을 생각하고 개인적인 약속, 경조사, 야근 끊고 공부에 매진하십시오. 설령 첫해 농사 실패하더라도 비옥한 밭이 생겨서 다음 에는 좀더 수월하게 풍작을 이룰 것이라 생각됩니다.
3. 가족에게 잘 하자. - 사실 저도 잘 못한 부분이긴 하지만, 수험기간동안 힘이 되어주고 이해해줄 사람은 가족입니다. 가족에게 응원을 받는다면 좀 더 행복한 수험생활이 될 것이라 확신합니다.
그밖에도 소소히 드리고 싶은 이야기가 있으나 가장 중요한 한가지만 추가하자면(너무나 유명한 이야기지만) "공부에 왕도는 없다"라는 것입니다. 누군가는 한번에 붙기도, 또 누군가는 십년을 공부하는 시험인데 저는 감히 "실력"이 가장 중요하지만 "운"과 "노하우"또한 무시할 수 없다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운"은 특별히 드릴 말씀이 없지만 "노하우"에 대해서는 "나만의 스타일"이라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누군가 성공한 방법이 나에게도 성공의 방법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뜬구름 잡는 소리같지만 내가 가장 잘 할 수 있고 편안한 방법(스타일)..그것을 꼭 찾으시기를 바랍니다.(건축사 시험에는 "정답"이 없다는 말과 일맥상통 합니다.)
여러모로 미흡한 글이지만 큰맘먹고 어려운 길 출발하시는 수험생들께 약간의 용기와 희망을 드렸으면 하는 바램이고 건축을 업으로 하는 선배, 동기, 후배의 마음으로 응원해드리고 싶습니다.
지난 2년간 지도해주시고 응원해주신 한솔아카데미 여러 선생님들과 직원분들께 감사드립니다. 사랑하는 아내, 이쁜 딸, 귀여운 아들에게 미안했고 감사합니다.
기도로 응원해준 교회 다락방 식구들에게 감사하고 귀한 인연을 만들어주시고 부족한 저에게 합격의 영광을 허락해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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