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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 안 되면 나 이제 안 할래. 올 해 1회 시험을 치르고 제가 했던 말입니다. 사실, 작년에 잘 봤다고 생각해서 합격 할 줄 알았는데 실망스러운 결과가 나왔습니다. 올 해 시험은 잘 본 거 같기는 하지만 작년처럼 기대했다가 실망하고 싶지 않았기에 아무런 생각도 하지 않으려 노력했던 것 같아요. 학원에서 올려주는 모범 답안도 보지도 않았어요. 정말 아무런 생각하기 싫었거든요. 3교시 시험을 보고 집에 가면서 울었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합니다. 설명하기 복잡한 심정이 한꺼번에 몰려오면서 눈물이 났어요. 화도 나고, 아쉬움도 있고, 속상하기도, 많이 지치기도, 끝났다는 안도감도.. 여러 감정들이 뒤섞여 있었습니다. 그리고 며칠을 지낸 후 결심을 했어요. 나 이번에 안 되면 그냥 안할래, 건축사.
결과 발표, 최종 합격. 결과 발표 아침, 제 점수를 확인했습니다. 그런데 내 눈 앞에 이상한 글자가 쓰여 있었죠. 어? 최종 합격? 이런 글자가 전에 과목 합격했을 때도 있었나 떠올려 봤습니다. 과목 합격자에게 주는 단어는 아니었지요. 어? 어?!!! 최종 합격! 믿기지가 않았어요. 제가 본 과목들의 점수를 하나씩 확인을 하고서야 진짜구나, 내가 합격을 했구나! 현실감이 생겼습니다. 어안이 벙벙했습니다. 게다가, 나름 자신 있어 했던 분석조닝 파트는 만점의 점수를 받을 걸 보고 2차 충격이 있었지요. 기대를 너무 안 했던 탓인지 합격이라는 단어가 제게 너무 크게 다가왔습니다. 다른 합격자 분들도 이런 기분이었을까요? 기분이 너무 들떠서 그 날은 정신없이 보낸 것 같습니다. 살짝, 울컥 해버렸어요.
정리. 자, 이제 건축사 공부와 관련된 모든 물품을 정리할 때가 왔습니다. 쉽게 버릴 수 있는 것이 있는가 하면, 한 장 한 장 공들여 그려보았던 도면들은 차마 버려지지가 않습니다. 이 도면들이 모여모여 결실을 맺게 해준 이유일까요. 아니면 내가 이렇게 고생했다는 유일한 흔적이기 때문일까요. 이제는 필요도, 두고 볼 이유도 없는데 쉬이 놔지지 않습니다. 아직 건축사 공부를 준비하는 친구들에게 넘겨줄 중요한 자료만 빼놓고는 모두 정리해 버렸습니다. 방에 꽉 차던 종이들이 없어지니 텅 빈 것만 같습니다. 하지만, 좋은 기분이에요.
끝. 건축사 시험 준비한다고 깨작깨작 거리던 시간은 꽤 되었지만, 정말 공부를 했던 시간은 생각보다 길지 않았습니다. 다만, 1년 중 8~9개월은 학원에 다니면서 공부하고, 주말에도 쉬지 못하고, 놀러도 갈 수 없고 그런 점들이 나의 시간을 매우 삭막하게 만든다고 생각했습니다. 별 다른 이유 없이 늘 기분이 다운되어 있었고 만사 귀찮았던 것 같아요. 합격하고 며칠 안 되었지만, 최근 몇 년 중 가장 행복하고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견디기 어려운 시험이었던 것 같습니다. 다른 응시자분들, 수강생분들도 비슷할 거라 생각합니다. 언제 끝날지 모르는 싸움에 많이 지쳤겠지만, 조금만 더 힘을 내시라고 전해드리고 싶어요. 조만간 꼭 이런 기쁨, 함께 느끼실 수 있을 거라 믿습니다. 파이팅 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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