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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1회 건축사자격시험 최종합격. 하루에도 수십번씩 불현듯 떠오르는 건축사 합격의 순간을 실제로 맞이하고 보니, 너무나 감개무량해서 합격 수기를 작성하고 있는 지금, 이 순간에도 여전히 벅차오르고 기쁩니다. 진짜 내가 합격한 것이 맞는 것인지 하루에도 몇 번씩 확인했는지 모릅니다. 합격에 들뜬 마음을 잠시 진정하고, 저의 지난 수험 생활을 돌아보려 합니다. 짧다고 하면 짧고, 길다고 하면 긴 수험 생활이었습니다.
때는 2017년으로 거슬러 올라가, 첫 시험 준비를 겨울부터 시작하였습니다. 결과적으로 실무수련 경력이 15일이 부족해서, 어차피 합격은 불가능한 상태였습니다. 그럼에도 건축사시험 준비는 빠르면 빠를수록 좋다는 말을 많이 들었던 터라, ‘하루라도 먼저 시작하자’라는 생각으로 타 학원에 1년 과정으로 등록하고 매주 토요일마다 학원 수업을 들었습니다.
담당 강사로부터 1과목이라도 되어야, 다음 시험 준비를 할 때 힘이 된다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속으로 기껏해야 100점 만점에 60점만 획득하면 되는 시험에 왜 이렇게 다들 목을 매는지 이해 못 했지만, 실제 시험공부를 하면서, 그런 생각이 얼마나 무지한 것이었는지 깨닫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습니다. 이론을 열심히 공부하였다고 해도, 막상 답안지에 지문에서 제시하는 요건을 제대로 이해 못 하는 것도 부지기수였고, 지문을 제대로 파악했다고 해도, 그걸 답안지에 표현하지 못하는 순간의 반복이었습니다. 당연히 결과도 실제 시험에서 전 과목을 처참하게 낙방했습니다. 아무리 동기부여가 떨어진다고 하더라도, 지난 1년의 노력이 이렇게 처참한 결과로 나타나는걸 겪으니, 다음 시험을 준비할 엄두가 나지 않았습니다. 아니, 정확하게 말하면 시험에 대한 겁이 났던 거 같습니다. 만만하게 생각했던 시험이 이제는 두려움으로 바뀐 거죠. 무엇보다 저를 괴롭게 했던 거는 가족에 대한 미안함이었습니다. 이제 갓 결혼하여 덜컥 아이가 생겨, 주말마다 자리를 비워야 하는 상황에서 아내에게 너무나 미안했습니다. 건축사라는 자격증이 제 개인에게는 너무나 중요한 문제였지만, 그것이 곧 신분 상승의 보증수표가 되는 것도 아니고, 제 개인을 위해 가족에게 희생을 강요하는 것 같아 몹시 괴로웠습니다. 학원 수강료부터 해서 많은 시간을 가족을 보살피지 못하는 상황에서 시험 결과도 좋지 않으니, 이 시험을 계속할 수 있을지 괴로웠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포기하기에는 아직 이르다고 생각했습니다. 아내에게 동의를 구하고, 다시 시험공부에 매진했습니다. 그렇게 2018년 시험에서 운 좋게 2교시가 합격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여전히 1교시와 3교시의 점수는 터무니없이 낮아서, 무엇인가 근본적으로 바꾸지 않으면 안 되겠다는 생각에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대전으로 향했습니다. 타 학원에서 배웠던 프로세스를 과감히 버리고, 작도부터 답안작성까지 완전히 갈아엎고 다시 시작하였습니다. 이렇게 서울에서 대전까지 일요일마다 새벽 기차를 타고 가서 학원 수업을 듣고 저녁 늦게 기차를 타고 올라오는 생활의 반복이었습니다. 순전히 이렇게 할 수 있었던 거는 김수원 선생님에 대한 믿음이 있었기에 가능했습니다. 주변에서는 서울에서 대전까지 학원을 간다는 얘기에 그렇게까지 해야 하냐는 말도 많이 들었지만, 익히 김수원 선생님에 대한 명성을 듣고 있었던바,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대전으로 내려갔던 겁니다. 결과적으로 저의 이 선택이 합격의 시기를 조금 더 단축해주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항상 1교시 배치에서 시간이 부족하여, 완성도가 현저히 떨어지는 도면을 작성하기에 급급했었는데, 김수원 선생님의 강의를 들으며, 하나하나 체계적으로 공부하면서 많은 자신감을 가질 수 있었습니다. 무엇보다, 악필인 제 글씨체를 바꾼 것만 하더라도 대단한 성공처럼 느껴졌습니다. 그렇게 2019년 시험에서 3교시가 간신히 합격이 되었고, 이번 2020년 시험에서 남은 1교시마저 합격하여, 최종합격의 기쁨을 누릴 수 있게 되었습니다. 2019년 시험에서 저는 너무나 자신감이 넘쳐서, 올해는 무조건 합격이라는 생각으로 자신감 있게 시험에 응했는데, 이게 되려 압박으로 돌아와서 1교시를 망쳤던 기억이 있습니다. 무조건 올해가 끝이라는 생각에 사로잡혀, 자신감 있게 밀고 나가지 못한 것을 반면교사 삼아, 이번 2020년 시험에서는 올해 떨어져도, 다음 시험에 또 도전하면 되지라는 생각으로 마음 편하게 소신껏 임했던 것이 주효했던 것 같습니다.
각 과목의 프로세스도 중요하고, 시간 내 도면 완성도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도 여유를 가지고 크게 내다볼 수 있는 자신감이 가장 중요한 것 같습니다. 이게 말처럼 쉽지는 않을 겁니다. 충분한 노력으로 어느 정도 경지에 올랐다고 하더라도, 시험은 시험인지라, 당일날 가슴이 쿵쾅거리는 것은 첫 시험이나 마지막 시험이나 마찬가지였던 거 같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동안 자신이 쌓았던 노력이 있기에 본인 자신을 믿고 과감하게 밀고 나간다면, 합격은 멀지 않은 곳에 있을 것입니다.
두서없는 제 글 읽어주신 모든 수험생분에게 감사드리고, 합격의 기쁨을 느끼는 그 순간까지 포기하지 마시고 전진하시길 바랍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끝까지 저를 지지하고 응원해준 아내에게 합격의 영광을 돌립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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