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처음으로 시험을 쳐야겠다는 마음을 먹었습니다. 반복되는 회사업무에 염증도 느꼈지만, 무엇보다도 이대로는 나에게나 우리가족에게 행복한 미래를 만들 수 없을 것이라는 위기감 때문이었습니다.
처음에는 회사를 그만두고 나와 아르바이트를 하며 틈틈이 공부를 하며 예비시험을 준비했었는데, 이 시험을 쳐본 사람은 알다시피 제대로 공부하지 않으면 결코 만만한 시험이 아니라는 것을 3년 전에 뼈저리게 느꼈던 터라 늦겨울부터는 가족에게는 정말 미안한 이야기지만 일도 팽개치고 공부에만 전념했었습니다.
오로지 ‘잃는 것이 없으면 얻어지는 것도 없다’라는 일념 하에 부족한 머리를 애써 쥐어짜며 공부한 덕에 그해 예비시험을 통과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 기쁨도 잠시 이번엔 건축사시험이라는 더 큰 산을 넘어야만 하는데, 과연 내가 한 번에 저 산을 뛰어넘을 수 있을까 긴가민가하면서 부산에 있는 모 학원에 등록을 하였습니다. 잠시 숨고를 틈도 없이 예비시험합격자 발표이후부터는 매일같이 학원, 집을 오가며 공부에 매진했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결국 실패했습니다.(나름 한과목이라도 붙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었지만, 시험 치기 전부터 예상한 나의 실력에서 한 치도 벗어남이 없이 그대로 결과가 만들어진 것에 대해 나의 한계를 느꼈습니다.) 아니, 변명을 해보자면 공부하는 방법을 몰라 가르쳐주면 가르쳐 주시는 데로 무턱대로 다 받아먹은 것이 탈이었던 것 같습니다. 나만의 방법도, 전략도 없이 앞에서 가르쳐주는 선생님의 입만 바라보며 뭔가 부족한 것을 느끼면서도 다른 시도조차 못해보고 시험장을 들어갔던 것 같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 아까운 시간을(직장까지 관두면서 시도했건만) 왜 그렇게 보냈나 싶은 것이 얼굴이 화끈거리기까지 했습니다. 좀 더 적극적으로, 전략적으로 했어야만 했는데, 그러지 못한 것이 늘 아쉬웠습니다.
2015년 1월 1일, 마음 맞는 친구들과 작은 사무실을 열었습니다. 작지만 나름대로 성과를 내면서 일을 진행하고 있으면서도 ‘올해는 반드시 합격자 이름에 내 이름을 올려보자’ 싶었습니다. 봄이 지나갈 무렵 이번에도 가족과 동료들에게 부탁을 했습니다. 잠시 공부에 전념하겠노라고.
그러고 나서 이번에는 실수하지 않으리라 생각하며 학원을 찾아다녔습니다.
어디로 가야하나, 누구를 만나야하나 고민하면서 돌아다니기를 며칠, 작년에 처음으로 나에게 작도하는 법을 가르쳐준 2004년도 어느 강사분의 동영상파일에 등장하는 장본인이 부산에도 내려온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 학원으로 당장 달려갔습니다.
원장님과 면담을 하면서 이 학원의 시설을 대충 훑어보고는 ‘정말 열악하네’라는 생각을 하며 하루만 청강할 수 없겠느냐고 사정했습니다. 사실 들어보고 마음에 안 맞으면 오지 않으리라는 생각도 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돌아온 대답은 예상하지 않았던‘NO’였습니다. 지금도 수강자가 꽉 차서 더 받을 수가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의외의 대답을 듣고 조금 망설이며 ‘뭐, 별 다른 것이 있겠어? 하다가 나와도 되지 뭐’라는 생각을 하고는 수강신청을 했습니다.
그 때 처음으로 김수원 선생님을 만났습니다. 하지만 뭔가 비정상적으로 보이기까지 한(정말 죄송하게도^^), 조금은 석연찮은 기분으로 ‘그 때 그 동영상의 강사가 맞나?’라는 의구심을 품으며 첫 수업을 들었고, 첫 시간은 처음 느낌대로 뭔가 모자란 상태로 끝이 났습니다. 일순간 선생님에 대한 신뢰가 조금 떨어지기까지 했습니다. ‘잘못 왔나? 환불할까?’라는 생각을 가지며 두 번째 시간을 들어갔는데, 직접 작도 시범을 보여 주시면서 수험생들의 상태를 일일이 체크하시는 모습에 동화되어 어느 순간부터 고개를 끄덕이기까지 하고 있는 나 자신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솔직히 그 때 부터였던 것 같습니다. 재미가 느껴졌던 것이. 뭔가 생각이 정리가 되면서 무엇을 취해야 하고, 무엇을 버려야할지 조금씩 알게 되었던 것 같습니다.
‘그래, 방법에 문제가 있었던 거야’라고 마음을 다잡고 그 다음부터는 일말의 의심도 없이 열심히 수업을 따라갔습니다. 모자라는 공부는 회사에 남아 독파하는 수준으로 매달렸으며, 법규 체크 및 문제유형 분석, 오답지의 끊임없는 리뷰를 통해(정말 과년도 문제는 몇 번인지 기억이 나지 않을 정도로 반복적으로 풀었습니다.) 어느 순간부터는 서서히 나만의 전략이 세워지기 시작했습니다.
사실 2014년까지만 해도 많이 풀어봐야 해답을 얻을 수 있을 것이라고 믿어왔었지만, 그 때문에 풀면 풀수록 더 피곤해지고 더 불안해지는 악순환을 되풀이해야만 했습니다만, 올해는 전략을 세운다면 양은 그렇게 중요하지 않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틀린 것에 대한 반복적인 리뷰와 핵심사항 정리 등이 나의 능력치를 하나하나 채워나갈 수 있는 무기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이 때 알았던 것입니다.
그러면서 매일같이 마음을 다잡기 위해 글씨와 선을 연습했습니다.
쓰고 또 쓰고, 선생님의 글씨처럼, 선처럼 만들기 위해 정말 절실하게 매달렸던 것 같습니다. 이것은 지금 생각해도 너무나 잘한 일인 것 같습니다.
시험당일, 그 수많은 수험생들 사이에서도 전혀 떨고 있지 않은 나의 모습을 발견하고는 살짝 웃음까지 나왔습니다. 자신이 있었다는 것은 아니었지만, 작년처럼 어이없는 답을 적지는 않으리라는 확신은 있었습니다. 예상대로 시험문제는 어려웠습니다. 하지만, 과감하게 ‘이 부분은 잘 모르겠으니, 감점을 감수하자. 어차피 100점짜리 시험을 노리고 있는 건 아니잖아’라는 자신감까지 생겼고, 완도의 목표를 넘어 도면을 도면답게, 그 동안의 경력을 감안하더라도 내가 할 수 있는 최고의 도면으로, 그려내자고 생각했습니다. 어쩌면 과하기까지 한 도면을 제출하고 기분 좋게 수험장을 나섰지만, 돌아와 가만히 복귀해보면서 결정적인 실수(스스로가 알아차릴 정도의)를 한 부분들을 찾아내고는 내심 불안한 마음으로 몇날 며칠 밤을 지새웠던 기억도 납니다. 선생님의 조심스런 예견에 더욱 불안 했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합격자 발표일, 조심스레 명단을 열어보고는 터져 나오는 환호성을 억누르며 가장먼저 나의 아내에게 달려가 기쁜 소식을 전했고 한동안 같이 실컷 웃으며 그 순간을 보냈습니다. 가장으로써의 일을 포기하고 앞으로만 달려가야 했던 그 때가 떠올라 만감이 교차하면서도 이제부터 시작이라는 미래의 새로운 길이 서서히 그려지기 시작했습니다. 그것은 다른 의미로 이제는 가족과의 즐거운 시간들을 만들어 나갈 수 있는 첫 걸음이라는 기대감 같은 것이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지금 생각해도 눈물이 날 정도로 내 인생에서 가장 뿌듯한 순간이었습니다.
포기하지 않고 여기까지 달려와 준 나 스스로에게도 대견하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끝으로 이 지면을 빌려 김수원 선생님께 진심으로 감사의 인사를 드리고 싶습니다.
어떤 때는 무서운 돌격대장 같다가도 어떤 때는 늘 친구 같은 그 모습에 홀딱 반했습니다. 시간상 늘 늦어 잘 들리지 않는 뒷자리에 앉아 고생은 쫌 했지만, 아마도 선생님의 명 강의는 단연 최고라고 자부합니다. 아직도 ‘수험장은 시험을 붙고 나서 다녀온다는 마음으로 가는 거지만, 어차피 다 떨어질 건데 뭔 걱정이여? 자신 있게 다녀와’라고 천연덕스럽게 웃으면서 농담을 내뱉으시는 선생님의 말이 계속 귓가에 남아 맴돌고 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까지 보여준 그 투혼과 늘 한 결 같이 건축을 사랑하는 그 마음만큼은 영원히 잊지 못할 것 같습니다.
늘 건강하시길 기원 하겠습니다. 다시 한 번 정말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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