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건축사시험에 있어서 살아있는 화석이라고 해도 될 것 같습니다. 지금의 한솔아카데미 이전 대우건축토목학원 시절부터 인연을 맺어왔습니다.
2000년도 건축사시험에 대한 풍운의꿈을 안고 가방만 들고 가면 붙을수 있을것같아 대구에서 학원공부를 2001년까지 2년연속 공부했습니다. 그당시 사는곳(지금도 마찬가지)이 영덕이라 귀중한 시간을 길바닥에 다 뿌리며 직장 다니랴 저녁에 공부하랴 토,일요일 학원가랴 정말 바쁘게 살았고 가족들의 고초도 이만저만이 아니었습니다. 그때 나는 건축에 대한 이론적인 정립이 너무나 부족했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강사님의 열정적인 강의에 귀를 기울일 때 나는 기본이 부족하여 수업시간에도 복도를 배회하게 만들었습니다. 마음은 건축사를 그토록 갈망하면서도 몸이 안따라주었습니다. 학창시절 그 어느때도 이런적은 없었습니다. A1 트레싱지 한 장에 시험을 보던 시절의 마지막주자이면서 미국식 현시험제도로 바뀐 시험의 첫주자였습니다. 직장생활의 고단함과 스트레스로 틈새시간을 내어 공부한다는 것이 미치도록 힘들었습니다.(다들 마찬가지이겠지만....)
그당시 조원용 강사님이 자기가 맡은 학원수강생중 18년째 낙방의 고배를 마신분도 있었다 하였습니다. 나는 그소리에 콧방귀를 뀌며 내하고는 전혀 상관없는 딴나라 사람의 이야기로 치부했습니다. 그런데 그게 바로 내이야기가 될줄이야.......! 그후로부터 건축사 합격까지 나는 18년을 넘어 20년이 걸렸습니다. 한솔에 계시는 김주석, 김수원, 임덕종 선생님...... 이분들의 젊은 시절과 이제 나이먹은 모습의 변천사를 한솔통신강좌를 통해 20년세월을 지켜보며 아 저분들이 저렇게 늙어가고 있구나 흰머리가 생기고....덩달아 이내몸도 같이 세월을 먹고 있구나..... 언제까지 서로 비교하며 바라봐야 할런지...... 지금 생각하면 강사님들 옛날에는 꽤나 미남들이었습니다. 2005년 합격자 192명을 보고 건축사 장벽이 너무 높음을 실감하고 2006년 1회시험을 끝으로 꿈을 일단 접었습니다.
그후로 세월은 바람같이 흘러갔고 마음은 항상 건축사를 되뇌이며 가정은 한때 위기를 맡기도 하였지만 더 이상 미룰 수 없어 2017년 예비시험 합격후 제도판가방을 풀어보니 아 글쎄 2006년 건축사시험 깔판 백상지가 협회 잉크도 선명한 상태로 그때 그 시험치던 무수한 연필자국과 함께 남아 있었던게 아닌가! 드디어 재기의 판도라의 상자가 열린셈이었다. 2017년 첫해에 완전 독학으로 기출문제 도면만 36장 그려보고 2교시 평면계획 합격(이 대목에서 김수원 강사님의 명강의 한번 못들어보고 합격하는 바람에 좀 아쉬움이 있음) 그후로 가능성이 있어보여 용기백배하여 통신강좌를 수강하며 도면 540장 그려보고 2018년 1교시 3교시 모조리 낙방 2019년 통신강좌 2단계만 재수강하며 도면 역시나 500장이상 그려보고 3교시 합격..... 1교시 분석 조닝은 고득점 했지만 배치가 너무 어려워 뒷받침이 되어주질 못했다는 아쉬움... 대망의 2020년 도면 800장 그려보고 작전상 아예 1,2,3교시 전부 지원하여 드디어 최종합격!
내 개인적인 합격의 키포인트를 말하자면..... 초중고를 미술실기대회로 전국을 휩쓸던 옛날(환쟁이는 밥 빌어먹는다는 부모님 말에 미대는 포기....)을 돌아보며 프리핸드 작전으로 시험에 임했다. 내 경우엔 이상하게 프리핸드로 답안작성한것만 무난히 합격하였다. 사실 중심선 이외의 모든 도면을 프리핸드로 그렸다.(나이가 50을 훌쩍 넘으니 눈도 노안이고 몸의 컨디션도 예전같지 않았다. 그래서 이시험은 합격자수를 떠나 50대는 정말 힘든 시험이었다) 그리고 자를 대는 것이 정신사납고 여러모로 너무 움직이 많고 복잡하였다. 그러나 모든 이들에게 적용하기엔 상당히 위험한 발상인 것만은 분명하다. 만약 시간이 촉박해 다급한 상황이 되면 프리핸드로 임기응변하는 의미로 받아들이면 되겠다. 아무리 잘그려도 출제교수의 의도를 벗어나면 점수는 저조했다. 분석조닝의 경우엔 결국 최대건축가능면적을 도출해내는 것이지만 너무 억지스럽게 짜맞추면 곤란하다.(출제교수는 현실적으로도 가능한 보편타당한 매스형태를 요구하는 것 같다)
2020년 분석조닝에서 학원답안 1안과 흡사하게 그려 34점을 받았다.(꼭 1점이 틀린이유를 모르겠다) 단면은 답안표현시 반자속은 썬팅을 해주었다.(점수 반영은 해당 안되지만 도면이 이뻐보인다) 단면에 노트표현은 설사 시간이 없어 단면안에 글씨가 조금 부족하드라도 꼭 표현하는 것이 대세라고 생각한다. 배치는 지금도 자신없다.(도면 2000장정도 연습한것에 대한 보답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진짜 합격을 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바로 화염과 분노였습니다. 이번시험을 보기 직전까지 나는 마지막 설계사무소에서 18년 넘게 수족같이 일했습니다. 결국 요근래 해마다 시험 본다는 이유가 업무에 방해와 지장을 준다하여 불편해하였고 좁은 시골 군단위라 건축사배출자체에 대해 경계의 눈총속에서 결국 퇴출당했습니다. 게다가 퇴직금의 절반이상을 근로자 5인미만 해당없음(2010년까지)(2012년까지는 50%만적용)을 적용하여 년도수를 핑계삼아 강탈당했습니다. 18년 넘게 직원이라고는 오직 나혼자 일한 사람한테 소위 건축사란 사람이 그러면 안되는것입니다.(혼자서 오너의 모든 것을 다 받아주며 그 스트레스가 이만저만이 아니었습니다.) 나는 회사로 따지면 창업멤버였고 나라로 따지면 건국공신이었습니다. 초창기 개업하여 지금 이만큼 성장하기까지 숱한 고생 다하며 산전수전 다 겪으며 참아왔는데 이제와서 나이먹고 건축사 공부 좀 한다니 귀찮아하며 퇴직금까지 법을 내세우며 다 주지 않다니요 법을 떠나 건축사의 그 알량한 도덕적 양심은 다 어디로 갔나요? 시험! 어떻게 합격했냐고요? 그 대단한 건축사협회라는곳에 제도권하에 들어가서 제대로 한번 그면모들을 살펴보고 싶었습니다. 직장에서 짤린지 5개월만에 보란 듯이 다시 살아나 금의환향할것입니다. 이제는 그들과 똑같은 계급장 달고 그들의 판에 뛰어들것입니다.
동지여러분 합격하고 싶으신가요? 왜 나는 안되는가! 세상을 향해 마음속에서 불꽃이 용솟음 치듯 분노하십시오.
나는 이제야 내려놓습니다. 그동안 정말 너무나 고달팠습니다. 한솔에 존경하는 강사님들 그동안 부족한 이 사람을 가르쳐주셔서 정말 고마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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