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 한가운데엔 해와 바람을 받아야하니 마당을 겸할 수 있는 중정이 있어야하고, 다락도 있으면 좋겠어. 우리 아이들이 데려올 손자 손녀들을 위해...” 아내는 은퇴 후 살 진짜 우리집을 지어줄 것을 요구했다. 건축하는 나에게 말이다. 설계건 시공이건 내가 다 해야하는 조건이었다. 건축사가 아니면 설계할 수 없다는 사실은 아내에게 중요하지 않았다. 올해 마지막인 예비시험에 응시할 수밖에 없었다.
“시험일까지 매일 2~3시간, 주말엔 종일. 이렇게 공부할 수 있다면 합격할 수 있습니다. 통계적으로 봐도 매해 완벽반에서 1~2명이 합격합니다. 그러니 반드시 완도해야 합니다.” 400시간 정도 공부하면 가능하겠냐는 나의 물음에 대한, 김정준 선생님의 답변이었다. 자격증 시험은 짧아야 한다는 평소의 생각과 일치했다. 예비시험 합격자 발표도 나기 전에, 일요 완벽반 강의는 그렇게 시작되고 있었다.
출퇴근길. 지하철에서 합격자들의 수기를 읽는 버릇이 생겼다. 그들의 수기는 합격까지의 고통과 합격 후의 환희를 말하고 있었다. 약해져가는 다짐은 수기를 읽고, 인내하는 아내를 지켜보면서 더 단단해지고 있었다. 문득 궁금해졌다. 합격자들에겐 어떤 공통점이 있을까? 최근 몇 년간의 합격 수기를 정리해보니 몇 가지 지점으로 수렴되고 있었다. 기출문제 풀이(30명), 완도/작도시간 단축(26명), 오답노트(12명), 지문에 답이 있음(12명), 나만의 프로세스(8명), 학원 커리큘럼에 성실히(6명), 시험 종료 전 체크(6명).... 그들이 말하는 것을 그대로 따라 해보기로 했다.
설계현업에 종사하지 않았으니 모든 학원 문제가 낯선 건 당연했다. 6주간 워밍업을 했음에도 7주차에 처음 접한 평면 문제는 이틀이 되어도 풀 수 없었다. 실력이 부족함을 자책하다보니 남아있던 의욕마저 사라져갔고, 손을 놓고 한 발 떨어져 있을 수밖에 없었다. 애초 계획한 400시간으로는 어림도 없으니 가능한 모든 시간이 동원되어야 했다. 목표 시간은 630시간으로 조정되었고, 시간 관리를 위해 엑셀을 활용해야했다.
앉아있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근육이 줄었고 체력은 약해졌다. 정신 또한 흐려지고 있었다. 무엇보다 걱정되는 건 허리디스크의 재발이었다. 누군가의 수기에서처럼 열심히 운동해야했다. 주 3일 수영과 1만보 이상 걷기. 몸이 건강해지는 만큼 정신도 다시 맑아지고 있었으나, 줄어든 몸무게와 체력은 회복되지 않았다.
“평면계획은 요구하는 지문을 얼마나 잘 <정리> 하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제발, <정리>....” 신명숙 선생님이 마지막까지 강조했던 말씀. 정리는 시험장에서도 나의 모든 것을 지배하고 있었다. 그런데, 정리라는 녀석은 문제를 이해하지 못하면 불가능했다. 매주 숙제를 빠짐없이 하고 체크를 받아야했다. 여전히 시간의 압박이 있었고, 학원이 제시한 모범 답안과는 거리가 있었으나, 풀이 시간이 줄고 모범 답안과 가까워지고 있었다. 용기와 희망, 좌절과 후회가 반복되고 있었다. 그렇게 80여일, 전국 모의고사 결과 - 평면계획 8등 - 는 이제 조금씩 정리가 되고 있음을 말해주었다. 한 번도 싫은 내색 없이 꼼꼼한 체크해주신 신명숙 선생님이 안계셨다면, 정리는 물론 합격은 불가능했으리라. 합격의 8할 이상은 선생님이 만들어 주었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잘 짜여진 학원 시스템, 다년간의 경험과 열정으로 무엇이 중요한지를 아는 선생님들, 경쟁과 격려가 적절히 섞인 학생들. 이 3박자 또한 한솔학원에서 좋은 결과가 지속되는 중요한 요소인 것으로 보인다.
그렇게 일과 공부를 함께하며 100일을 달렸다. 합격자 발표까지 어떤 조바심과 기쁨이 오갔는지는 수없이 많은 수기들이 있으니 생략하기로 하자.
합격자 세미나에서 만난 선생님들은 자신의 일처럼 기뻐해 주셨다. 특히 한 해에 예비시험과 본 시험을 한 번에 합격한 것은 매우 드문 일이라며, 축하 케이크 절단의 영광도 주셨다.
이제 모든 것이 끝났다. 무엇보다 죄스러운 것은 함께 공부한 동료들에게다. 나보다 더 큰 고민의 지점에 있었고 더 많은 노력을 했음에도 좋은 결과로 이어지지 않아 실망했을 이들. 지금부터 다시 시작할 것을, 그동안의 고민이 실력이 되어 있음을 믿고 힘차게 달리실 것을 권한다.
김광현 선생은 건축을, 무수한 행위와 생각이 반복되는 일상의 중심이라 했다. 돌아보면 건축사 시험 또한 선생이 정의한 건축의 성격과 맞닿아 있는 것으로 보인다. 무수한 희망과 용기, 좌절과 후회가 반복되는 과정을 통해 앞으로 건축사가 추구해야할 일상과 가치를 만들어가는 하나의 과정이었다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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