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무경험도 거의 없고, 주위에 물어볼 사람도 없어 무엇을, 얼마나, 어떻게 해야 할지 감이 잡히지 않아 인터넷으로 수많은 건축사 합격수기를 찾아 읽었습니다. 많은 합격수기에서 처절하게 공부한 흔적과 그분들의 높은 경지를 엿볼수 있었고 그러면서 나에겐 결코 몇 년씩 공부할 수 있는 인내심과 체력이 없다는 생각에 ‘한번에 끝내자’라는 무모한 결심을 합니다. 끝날 때 까지 그 생각은 변함없이 확고했고 합격자들이 말하는 절박함, 확고한 목표의식이 이런게 아닐까 생각됩니다.
다행히 저의 목표는 이루어졌고, 합격자 발표날 합격의 기쁨보다도 다시 하지 않아도 된다는 안도감이 몇배는 컸습니다.
처음 공부를 시작하면서부터 매일 매일 공부시간을 기록하였습니다. 주어 들은 얘기 중 600시간 또는 1000시간은 해야만 합격할 수 있다는 절대시간. 막막한 것 투성이인 이 시험에서 무언가 의지하고 버틸 수 있는 작은 지표 같은 게 필요했고, 좋은 쪽으로 기억하려는 습성상 좀만 공부하고도 많이 한 듯 한 착각을 하지 않도록 해주는 안전장치였습니다.
시험전날까지 따져보니 1500시간이 좀 안됐습니다. 저는 다른 사람들에 비해 실무경험이 많이 부족했고 그만큼 공부시간으로 채운다고 생각했습니다.
회사 업무 외에 하고 싶은 것, 갖고 싶은 것 모든 욕구에 ‘시험 끝나고’ 라는 말을 주문처럼 되뇌였고, 친구들에게도 미리 일년 후에 보자고 통지한 후 통화나 카톡도 거의 끊다시피 하였습니다. 유혹에 약한 나를 알기에 아예 차단하는 방법을 택하였습니다.
프로세스를 만들고, 시간내 완도하는 습관을 들이며, 과제는 반드시 해야 하고, 과년도문제는 반복해서 풀어보고,,, 학원 교수님이 하시는 수많은 조언들은 빠뜨리지 말고 모두 새겨 들어야 합니다. 효율적으로 공부할 수 있는 중요한 길잡이들입니다. 저 또한 열심히 들은 것 같은데 흘려 버린게 많아 그로 인해 많은 시행착오를 거쳐야 했고 나중에야 그 말씀이 ‘이거였구나’ 라고 안타까워 했습니다.
처음 단면도를 그렸을 때 7~8시간이 걸렸고, 그 후 시간이 흐른 뒤에도 3시간에서 좀처럼 줄지 않았습니다. 꼬박 3시간을 집중하여 단면 한 장을 그리고 나면 체력이 바닥이 되었습니다. 문제풀이 과정에 들어가기 전에 작도시간을 해결해야 했습니다. 우선 작도량이 많은 과년도 답안들을 10장이상씩 계속 베껴 그려보았습니다. 2시간까지 줄었는데, 더 줄여야 했고 방법을 조금 바꿨습니다. 1단계 레이아웃에서 골조까지만 2단계 단열, 방수, 입면 등, 3단계 치수, 글씨로 나누어 각 단계별로 반복하는 방법입니다. 집중시간이 짧아지니 체력적으로도 부담이 없어지고, 작도범위가 작아지면서 스케일을 거의 사용하지 않고 그릴 수 있는 방법과 어떤 선을 먼저 그리는 게 시간이 조금이라도 단축하게 되는지 생각할 수 있는 여유가 생겼습니다.
이렇게 단면 작도시간이 1시간20분까지 줄었고, 신기하게도 별도 작도 연습 없이 평면과 배치의 작도시간까지 덩달아 확 줄었습니다. 작도에 대한 부담이 사라지면 계획에 집중할 수 있게 됩니다.
6월에 들어서니 헤어 나오기 힘든 슬럼프도 오고 시험일자는 다가오는데 아직 반도 못한거 같아 회사 휴직시점을 8월에서 7월로 예정보다 한달 앞당겼습니다. 7월초부터 모의고사 전까지 학원에서 살다시피 하였고 이 기간 동안 많은 부분을 해결할 수 있었습니다. 시험 전 휴직을 계획하신다면 8월 말고 7월을 추천합니다.
모의고사를 치루고 나면 시험이 현실적으로 피부에 와닿고 공부는 손에 안잡힙니다. 나중에 보니 시험 한 달 전 이 시기를 어떻게 보내는지가 정말 중요한 것 같습니다.
문제풀이를 중단하고 그동안 풀었던 문제들을 모두 꺼내었습니다. 저는 오답노트를 따로 만들지는 않았고, 문제를 풀면 모범답안과 맞추어 본 후 틀린 부분에 대해 왜 틀리게 되었는지 또는 체크 받을 때 교수님이 해주신 말씀을 내 답안에 간단히 적어서 문제지와 답지를 묶어 과목별, 유형별로 분류해 놓았습니다.
분석조닝과 단면, 구조문제들은 지문을 찬찬히 읽어보고 실수했던 내역을 리스트로 만들어 보았고, 배치와 평면은 놀이하듯 편안한 마음으로 색칠공부(?)를 하였습니다. 배치문제는 지문을 쭉 읽어만 본 후 답지에 형광펜으로 도로축, 지형축, 동선축 들을 그려보고 차로와 보행로를 다른 색으로 칠해 보았습니다. 평면은 코아, 동선, 조닝별로 다른 색을 칠하고 도로, 조망, 주변환경 등을 검토했습니다. 그러다보니 이전까지는 문제를 대할 때마다 항상 요구조건 하나하나에 시야가 갇혀 있었는데 서서히 큰 그림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아, 이거였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시험 전 일주일은 잘 먹고, 잘 자고, 공부도 적당히 하면서 컨디션관리에 들어갔습니다. 하지만 결과는 실패. 시험전날 한숨도 못자고 최악의 컨디션으로 시험장에 가야 했습니다. 평소에도 머리가 맑지 않을 땐 문제가 잘 안풀렸기 때문에 최악의 상태로 시험을 봐야한다는 생각에 정말 암담할 뿐이였습니다. 교실에 제일 먼저 도착해 제도판 설치하고 시험 시작 전까지 잤습니다. 쉬는 시간과 점심시간에도 최대한 잤습니다. 1교시때는 머리가 멍했고 2교시부터는 체력이 바닥나 식은땀이 흐르면서 빨리 시험이 끝나기만을 바랬습니다.
그 날 저의 최대한의 목표는 완도였습니다. 상태가 그 모냥이라 잘 풀기는 글럿고 요행이라도 바랠수 있게 완도라도 하자는 생각이였습니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최악의 컨디션이 저에겐 행운이였다는 생각도 합니다. 개인적 판단으론 올해 시험문제는 쉬었습니다. 특히 1교시는 문제가 너무 쉬워 내가 뭘 잘못 본 게 아닌지 지문을 몇 번씩 읽어봤습니다. 만일 컨디션이 좋았다면 잘 풀려는 욕심에 돌이킬 수 없는 치명적인 실수를 했을 가능성이 높은 위험한 난이도였습니다. 그동안 문제풀이 과정에서 정말 말도 안되는 실수들을 참 많이 하였습니다.
이렇게 시험날이 지나고 힘든 건 모두 끝났다고 생각했는데, 마지막 고비는 합격자 발표 전날이였습니다. 하루 종일 마음은 갈피를 잡지 못하고 일도 안되고, 시간은 너무 천천히 흘러 숨이 막힐 지경이였습니다.
다 지나고 다시 곱십어 보아도 이 시험은 정말 다시 마주치고 싶지 않은 대상입니다. 남자분들의 군대에 대한 심정이 이런 걸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