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토요완벽반을 수강했던 김흥수입니다. 제목은 정말 거창하게 썼는데, 내용은 부실할까봐 시작부터 걱정입니다. 4년제 건축공학과를 나오고, 시작은 메이저 설계사, 그 후 작은 설계사, 그리고 BIM 설계, 해외 현장, (결혼하며 돈 많이 벌려는 목적으로) 전원주택 시공사업 등등을 했습니다.
저는 작년 40살에 결혼하고, 올해 41살에 첫 아이를 낳았습니다.
올해 초 건축사 예비시험 자격 조건이 몇 해 안남았다는 생각이 들고, 그래서 그냥 일단 시험 접수만 했습니다. 한 한달 남기고 공부하면 되겠지라고 생각을 했는데, 아내의 임신과 전원주택 시공현장의 여건등으로 인해서, 예비시험 당일까지도 공부를 하나도 못했습니다. 시험 보러 가는데 아내가 " 왜 보러 가요? 시험 공부 하나도 못했는데, 그냥 편하게 보고 와요. ^^;" 해서 정말 편하게 보고,왔는데 의외로 합격을 했습니다. 구조, 시공에서 높은 점수를 받고, 설계에서 좀 멀리 있었다 보니, 법규를 과락을 겨우 면한 상태로 합격을 했습니다.(아내부터 놀라더군요)
예비시험 합격자 발표 나고, 일단 아무것도 모르니 학원은 등록을 해야겠다 하고, 사회생활 시작했던 회사 분들이 교수님으로 많이 있는 한솔을 택하게 되었습니다. 임모 교수님. 김모 교수님, 또 김모 교수님등등, 안면있고, 친분있는 분들이라 도움을 받을 수 있겠다는 막연한 희망을 가지고 주말 토요완벽반을 접수를 했습니다. 하지만 아내가 만삭이라서, 첫 번째 수업은 어영부영 듣고, 두번째 수업하는 날 첫째 아이가 태어나면서 빠지고. 세번째 시간은 산후 조리 한다고 집중을 못하고... 첫 건축설계 1 수업은 그냥 그렇게 넘겼습니다.
그러나 아이가 태어나니 정말 정신이 번쩍 들었습니다. 이 아이가 자라고 대학 갈 때 쯤이면 나이 60.. 그떈 정말 무엇을 먹고 살까하는 생각이 드니까, 마음가짐이 달라지더라구요. 그래서 아내에게 이야길 하고, 아내가 산후 조리원에서 나오는 날부터 시험까지 3개월 일을 그만두고, 시험에만 전념하기로 했습니다. 주변에서 들리는 이야기론 몇 년을 해도 안된다고 하는 말에. 첫 시험인데 그래도 하는 데 까지 해보자는 마음으로 공부를 시작했습니다.
첫 OT때 부원장님이나 첫 수업 때 박원영 교수님이 말씀하시길 이 완벽반에서도 매년 몇 명씩 합격하시는 분들이 나온다는 이야길 듣고, 희망을 가지고 열정적으로 도전을 했습니다.
8시에 기상해서 9시에 자리 잡고,(핸드폰은 무음으로 다른 방에 놓고), 마음가짐을 가다 듬는 행동으로 기도를 하고, 문제를 풀었습니다(매일). 처음엔 한 문제 푸는데 7시간 정도 흐르더군요. 그 뒤에 계속 답안 작성을 해보니 시간은 정말 쑥쑥 줄어들었습니다. 그러나 아이가 운다고, 아내가 일좀 본다고, 아이를 앞으로 안아서 작도하는 등등등으로 시간이 집중이 안되는 상황에서 한달이 흘렀습니다. 그리고 TV모의고사를 하면서, 시간 내로 답안 작성이 안되는 상황에서 아내와 다시 이야길 하고, 밤에는 내가 온전히 아이를 볼테니, 낮 시간에는 집중 할 수 있게 배려 해 달라고 하고, 집중적인 모드로 들어갔습니다.
밥 먹는 시간도 줄여 가며, 자체적으로 야근(?)을 하며 하루에 도면 6~7장씩 무조건 그려 나갔습니다.(정리해 보니 총 400장 가까이 그렸더군요) 밤에는 자주 깨는 신생아 보느라 많이 피곤한 상황이었습니다. 그러나 밤에 곤히 잠든 아이 얼굴을 보니 다음날의 의욕이 재충전 되었습니다.
학원 문제지 A만 받다가, 권성만 교수님(개인적으로 너무 감사하신 분)이 B유형도 다 나눠줘서, B유형이 있는걸 알고, 그 전에 B형 문제들, 그리고 자습실 문제들을 모았습니다, 풀지 못해서 밀려도 일단은 모았습니다. 사무실에선 줄 수 없다는걸 떼를 써가며 받아다가 쌓아 놓고 풀어대기 시작했습니다.
사람들과 연락도 끊고, 전화도 안하고, 그냥 제 공부방에서 수염도 머리도 안 깎고 폐인처럼 지냈습니다. 학원도 밤에 자고 일어난 반바지에 면티 딸랑 한 장 입고, 시장바구니에 제도 용품 챙겨 넣고, 주변 시선은 아랑곳 하지 않고 다녔습니다. 단장하는데 들어갈 시간에 지문 1자라도 더 정독하자는 마음가짐이었습니다. 일주일에 딱 하루 주일만 교회를 가느라 인간처럼 꾸미고, 나머지 요일은 무조건 몰두했습니다. 그러나 사람이다 보니 리듬 타는건 어쩔 수가 없고, 잘되는 시기와 안되는 시기가 주기적으로 오는걸 알고, 시험 보는 날이 최고의 잘되는 최고의 시기가 되도록 리듬을 인위적으로 조절했습니다. 정작 시험 때가 다가오니 손이 떨리고, 문제 풀이 답안 작성도 잘 안되고, 처지더라고요. 그래서 주변에 많은 사람들이 시험 때가 되면 그냥 본다고 하는 이유를 알겠더라고요.
그러나 시험보기 전날까지 포기 하지 않고, 권성만 교수님이 따로 정리해서 나눠주신 A4용지에 있는 내용대로, "잘보기 위한 시험이 아닌, 떨어지지 않기 위한 시험"을 보는 자세로 임하기로 마음먹었습니다. 또 1교시 정리해주신 것 중에 연접주차가 시험당일 아침에 눈에 확 들어왔는데, 그날 시험에 출제가 되면서, 이건 뭔가 느낌이 왔습니다. 거기에 쓰인 또 다른 사항 중에 "도면작성 요령을 반드시 지켜라"라는 사항에 왠지 모르게 필이 꼽혀서, 답안에 무조건 도면 작성 요령대로 기입을 했습니다.
시험 결과 발표 후에 제 답안을 보고 나니, 답안은 계획 강론에서 큰 틀에서 벗어나지 않으면, 도면작성 요령에 나온 사항들은 잘 지키면 합격선이 되는 거 같습니다. 점수의 기준이 얼마나 기똥찬 설계를 뽑느냐가 아니라, 기본이 얼마나 잘 되어 있느냐를 보는 거 같습니다. 대학 다닐 때 설계 수업때 교수님들 크리틱을 보면, 결국 교수님 말 잘 듣는 사람이 좋은 학점을 받게 되는 것과 같은거 같습니다. 시험에선 그 말이 도면작성 요령이라고 보여집니다.
학원에서 수업 받을 때도 잘 강조를 안해서 놓치고 갔었는데, 시험 보기 전날 본 그 A4용지에 정리된 내용이 정말로 많은 영향을 준 것 같습니다.
진짜 절박함과 책임감이 없었다면 할 수 없었던 시험 인거 같습니다. 6월 19일부터 9월 16일까지 3개월이란 시간이 어쩌면 제 인생에서 가장 집중력 높았던 시간이었던거 같습니다. 밤마다 잠든 아이 얼굴 보면서, 매일 매일 의지를 다졌던게, 그리고 기도하면서 마음을 다졌던게 합격의 원동력이 되었던거 같습니다.